라이프로그


한글공부방 2년차!!! 낙서장

10월에는 알리와 리의 생일이 1주일 간격으로 있어 4천원짜리 케잌과 콜라를 놓고 생일 파티를 두 번이나 했다. 21살 동갑내기인 두 친구는 같은 몽족으로 아주 친하다. 내가 둘이 싸운 적이 없냐고 하니 한 번도 그런적이 없다고 하는데 옆에서 두 사람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한글 공부방은 작년 3월부터 시작을 했으니 이제 햇수로 2년째로 접어든다. 지난 9, 4학년 이 된 이 친구들은 이제 학교에서 가장 선배가 되었다.

 

두 사람 중 알리는 반에서 항상 1, 2등을 하고, 리는 중간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많이 나서 수업을 하는데 조금 애를 먹는다. 그동안 이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라오스 국립대학의 학습 환경이 상당히 열악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졸업을 해도 실력이 미흡해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한 학급 30명중 5,6명도 안된다고 한다. 사실 60년대 초의 우리나라 대학사정도 이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라오스의 21살은 여자들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나이다. 라오스는 여자들은 몇 살에 결혼 하냐고 물어보니 보통 18살 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여기 풍습은 결혼을 하면 대부분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사는데 생활의 주도권도 여자가 갖는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먹여 살리는 것이 당연한 일로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들 하는 일을 거들어 주며 빈둥거리며 논다.

집안 대소사는 여자들이 알아서 하고 만약 부부가 이혼을 하면 아이들은 당연히 여자가 데리고 산다.

요즘 와서는 이 나라도 많이 변해 젊은 사람들끼리 따로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풍습이나 습관은 무시를 할 수가 없다.

 

두 친구들과 교과서를 가지고 읽기와 듣기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와 다른 이 나라 사람들의 내면의 모습을 알게 되는데 우리나라와 생활 습관이나 풍습이 많이 달라서 오해의 소지가 생기지 않도록 상당히 조심을 한다.

 

알리와 리는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두 사람 모두 대부분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그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결혼 적령기를 넘기면서 대학공부를 하는 이들은 이 나라에서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학 다닌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은 특수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어려워 라오스국립대학에 들어오려면 보통 101의 이상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생각하는 것들도 일반 라오인들과 달리 자기들이 처한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생각들이 많아 나름대로 상당한 결심과 노력들을 하고 있다.

 

집이 20km정도 떨어져 있는 리는 금요일 저녁이면 집안 농사일을 거들러 집에 가야한다. 어머니의 요구도 있지만 본인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나는 리와 개인 상담을 하면서 물어 보았다.

너는 내년에 대학 졸업한 뒤에 집에 가서 농사지을 거야?”

그는 내 얘기를 강하게 부인을 한다.

그러면 한국말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내년에 학교 졸업한 뒤에 월급 많이 받는 직장에 취직을 해야지 공부 안하고 집에 가서 밭 일만 하면 어떻게 해?”

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못한다.

 

너는 지금 학교 근처 언니 집에서 한방에 5명이 살면서 공부할 장소도 없고, 또 주말이면 집에 가서 농사일도 거들어야 하고 그러면 언제 공부를 하냐? 네가 엄마한테 농사일 안하고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만 하겠다고 상의 드려서 승낙 받으면 선생님이 기숙사에 넣어 줄게

 

그래서 이번에 4학년 올라가면서 리를 기숙사에 넣어 줬다. 어렵게 여건을 마련해 줬지만 결과는 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알리를 보면 나는 물을 빨아드리는 스펀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가르치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놀라울 정도로 흡수를 해 버린다. 웅변 연습을 위해 원고를 써주고 발음 교정을 해주면 연구를 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도 있고 매사가 아주 적극적이다.

 

4학년에 올라오면서 알리에게 이제 앞으로 1년밖에 안 남았으니 한국어만 아니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라라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리와 같이 영어 교습을 받기로 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 잘 됐네, 수업료는

, 다른 사람보다 싸게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영어 교습은 포기를 했다고 한다. 왜 포기했냐고 하니 예년에는 9월에 학년이 바뀐 뒤 뒤 다음해 3월 까지 1년 수업료를 내었는데 금년부터 규정이 바뀌어 12월까지 완납을 해야 하고 만약 못 내면 매달 이자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려고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구나하고 모른 척 하자니 너무 마음이 답답해 진다.

지금 한글공부방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유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후원회의 상황도 그리 만만치를 않다. 후원회 회원들은 한 달에 만원에서 5만원사이의 후원금을 꼬박꼬박 보내주어 그 고마움은 표현할 길이 없는데 그 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처음에는 10명이 넘던 숫자가 4~5명 정도로 줄어 마음이 조마조마해 진다.

나는 한글 공부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이 온통 공부방에 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본인들의 일에 바쁘니 관심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처음에 무슨 생각으로 한글공부방을 시작한다고 했을까?

능력도 없으면서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은 해 놓고 감당을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큰 돈도 아닌데 이렇게 헤메고 있으니…….

공부방을 접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는데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그럴 용기도 안 난다.

 

지난주 공부하러 왔을 때 알리가 얼마 전 학교에서 한글학과 전체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읽기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1등을 해서 상품을 탔다는 보고와 함께 사진을 보여준다. 왜 기뻐하는 마음과 더불어 한숨이 나올까? 

노년을 라오스에서 작은 봉사를 하며 노후의 보람을 기대했는데 그것이 과도한 욕심이란 말인가? 남들은 말년에 세계 유람을 다니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린 학생들 데리고 그들의 알량한 뒷바라지가 버거워 한숨을 쉬는 처지가 되었으니 내신세가 조금은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제 저녁 공부를 끝내고 돌아가는 두 아가씨에게 기숙사에 가서 끓여먹으라고 라면을 한 개씩 주니 그렇게 좋아할 수 없는 모습에 기쁨과 탄식이 절로 나는 내 자신을 돌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하는 일이 조금 힘들다고 인상쓰며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지, 어려워도 우리 함께 버텨보자꾸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있겠냐?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저희들끼리 재잘대며 아파트 주차장 밖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다.

 


강병광 형님과의 인연 사람들


내가 병광 형님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 고대산악부에 입회하면서 부터이니 병광 형님과 같이한 세월이 어느새 56년이나 되었다.

당시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산악부의 분위기에서 9년이나 선배인 병광 형님은 하나님 같은 존재였는데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형님은 동기들 중에서도 가까이 하기가 제일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생각이 바뀐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의 어느 해 가을날 북한산에서 재학생과 오비 합동 산행을 하던 때의 일이 있고 나서 부터이다. 병광 형님은 고대산악회 O B회 초대 회장으로 산행에 참석을 하시었는데, 단풍 막바지낙엽이 휘날리는 산자락에서 우리 일행 30여명은 나무 밑에 둘러 앉아 오붓한 모임의 자리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특별히 준비한 와인으로 잔을 채우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마침 떨어지는 단풍잎이 병광 형님의 잔에 들어갔다. 옆에 앉았던 내가 얼른 그 낙엽을 건저 내려니 병광 형님이 내 손을 황급히 막으며 이런 단풍잎은 건져 내는 게 아니야하시며 그 잔을 들고 그윽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는 모습에 나는 병광 형님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아니 병광 형님에게 이런 면이?

 

우리 산악부엔 54학번 병광 형님의 동기가 다섯 분이다. 모두 해병대를 제대하셨는데 당시 부잣집 도련님들인 이 다섯 분은 각자 개성이 강하고 와일드하여 고대 내에서는 주위에서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존재감이 확실한 분들이었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6.25전쟁 중 휴전이 된지 얼마 안 되는 1950년대 중반, 고대 내의 모든 시설들은 상당히 빈약하였는데 학생식당도 마찬가지여서 점심때는 식당 안에 앉을 자리가 없어 자리 잡느라고 난리 였다. 그런 와중에도 식탁 하나는 항상 비어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는 바로 이 다섯 분의 지정석으로, 여기에 누군가 모르고 앉았다가는 그날이 바로 그들의 제사상 받는 날이 되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을 정도였다.

 

병광 형님은 알고 보면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상당히 감성이 풍부하고 그림, 음악, 수예, 공예, 사진, 스키, 산악 등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난 분이다. 그래서 병광 형님의 진면목을 뒤 늦게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2008년은 우리 고대산악회가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 고대산악 70년사를 발간하게 되었는데 마침 내가 편찬위원장을 맡아 그 준비로 54학번 다섯 분을 모시고 좌담회를 갖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속초에 거주하시던 병광 형님을 서울로 오시도록 초청을 하였는데 약속시간보다 먼저 오신 형님과 찻집에서 단둘이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형님이 나를 보고 !, 너 지금 몇 살이냐?”하고 물으신다.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내다 보니 항상 어린 시절 모습만 기억하다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내 나이가 궁금 하셨던 모양이다.

 

형님, 저도 이제 경로우대증을 받을 나이가 되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니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형님의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내가 당황을 하는데 형님은 목이 멘 목소리로

상태야, 내가 산에서 너한테 물 떠오라고 심부름 시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너도 어느새 노인네가 되었구나

형님이 눈물을 흘리는데 후배가 앞에서 멀뚱히 앉아 있으면 불경죄에 속한다. 그래서 우리 두 노인네는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병광형님은 이처럼 감성이 여린 분이다.



병광 형님은 형수님이 수년간 투병을 하는 동안 일체의 외출을 안 하시고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신 정말 지고지순한 열부이셨다. 그런데 끝내 형수님이 돌아가시자 그 상심함은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울 지경인데 몇 년을 방황하던 형님은 형수님과의 추억이 깃든 집이 있는 서울에서 도저히 지내기가 힘들다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산과 바다가 있는 한적한 곳, 속초로 낙향을 하셨다.

 

형님은 속초로 오시면서 3년을 기약하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3년 이상 더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 사는 집도 월세로 얻고, 자동차도 소형 중고차로 마련하고, 냉장고와 세탁기, 가재도구들도 당분간 사용할 만한 것들로 장만하였다고 한다.

당시 형님의 작은 아파트는 여러 사람의 화제에 올랐다. 아파트에 들어가면 입구의 작은 방에 텐트가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끄는데 몇 발자국 더 들어가 펼쳐지는 거실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 선다.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온갖 소품들, 마치 황학동 고물시장의 물건들을 전부 가져다 놓은 듯한데 가만히 보면 전부 귀한 물건 들이다. 등산 장비, 여러대의 오래된 카메라들, 그림 그리는 받침대 이젤, , 도끼, 노트북, , 접시 등 헤아릴 수가 없는데 신기한 것은 모든 물건이 무질서 속에 나름대로의 질서를 찾아 놓여 있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단연 압권인 것은 형님이 벽에다가 직접 그려 놓은 인수봉 암봉의 커다란 연필화의 모습이다.

이런 모든 집안의 모습에서 나는 형님이 아픈 마음을 정리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형님이 3년을 무사히 넘기셔야 하는데…….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경우를 당하게 된다. 그럴 때 그 일에 너무 집착을 하다보면 점점 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땐 과감하게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기약했던 3년을 넘긴 형님의 경우가 그런가 보다.

지난번 형님이

“3년을 기약하고 속초로 왔는데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형님의 마음이 상당히 편안해 지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인연의 인도로 가톨릭에 귀의하시니 옆에서 보기에도 안심이 된다.



  

형님은 겨울철이면 용평 스키장에 방을 하나 마련해 놓고 스키를 타시는데 심심하면 전화를 거신다. 형님은 성격이 단순하시어 상대편의 상황을 별로 생각을 안 하신다.

상태야 이곳 용평스키장 눈이 끝내준다. 빨리 와라, ? 할 일이 많다고? 네가 할 일이 뭐가 있어, 오기 싫으면 그만두고

그래서 마음 약한 나는 용평으로, 속초로 갑자기 다녀간 것이 몇몇 번이던가?

   





그런데 형님이 거처를 속초에서 양양 상왕도리의 공방으로 옮긴 뒤에, 우리의 얘기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내가 2016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뒤 할일 없이 집에서 답답해하고 있음을 알아챈 형님의 꼬임에 나는 덜컥 방 하나를 얻어 양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형님의 공방과는 차로 5,6분 이내의 거리인데 이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형님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음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사를 하자마자 형님의 호출이 시작된다.

상태야, 내일 아침 일찍 공방으로 와라, 덥기 전에 빨리 잔디를 깎자

 

남 대장, 점심에 속초에 가서 순댓국 먹자, 내가 술 한 잔 하면 네가 운전을 해야하지 않겠냐?”

처음엔 멋모르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다 보니 나는 마치 5분 대기조 같아 편안한 개인 시간이 보장이 안 된다. 그래서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막상 전화가 없으면 이 양반 어디 편찮으신가? 하고 궁금해 지기도 한다. 참 미워할 수 없는 형님의 행보에 나의 양양 생활은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겨울 철 눈이 많이 온 다음 날 아침 형님의 전화

남 대장, 어제 눈이 많이 왔네, 해변 경치가 끝내줄텐데 우리 스키 가지고 사진 찍으러 가자, 빨리 공방으로 와라

그래서 나는 형님 모시고 양양의 파도가 치는 한적한 해변 눈밭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눈 덮힌 백사장과 몰려오는 파도가 적당한 조화를 이루어 멋진 경치에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뒤 그냥 갈 수 없다는 형님의 말씀에 근처 식당에 가서 형님은 기분 좋게 소주 한잔하시고 그런 형님의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를 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니 그림이 아주 그럴 듯하다. 나 같으면 눈 덮인 해변은 그냥 지나갈 일인데 형님의 생각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병광 형님의 공방에는 형님이 만들어 걸어 놓은 “MIRACLE" 이라는 작은 간판이 있다. 이 공방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의미인가? 그러고 보니 형님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3년 기약을 하고 오신 것이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이런 기적이 어디 있는가?

 

형님의 연세는 이제 86세 이시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하지가 않다. 문득 어느 시인의 싯귀가 생각이 난다.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고

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그리고 가지 않으면

歲月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한국을 떠나 라오스의 비엔티안에서 생활을 한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지난번 형님과의 통화중, 지금 앞치마에 수를 놓고 계시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형님의 수 솜씨를 본 지인이 수를 놓은 앞치마 작품들을 가지고 인사동에서 조그만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하여 지금 그 준비 중인데 그 때 손님들에게 나누어 드릴 안내 책자에 형님을 소개하는 글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할머니도 아니고 90이 다된 할아버지가 앞치마에 수를 놓고 그 작품성이 훌륭해 앞치마 전시회를 하신다?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형님의 인생 말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도 양양 공방의 작은 간판 “MIRACLE"의 위력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는가 보다.

             

20199월 어느날,

라오스의 비엔티안에서 병광형님을 생각하며


양알리의 한국방문 낙서장

"양알리"는 라오스 국립대학교 한국어과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양알리"와 그의 친구 "리"는 2019년 초부터 나와 인연이 되어 내가 일주일에 3번 한국어 교습을 해주고 있다.

한국어과에 다니는 라오스 학생들은 학교 수업만 가지고는 한국어 습득이 어려워 4학년 과정을 전부 이수하더라도 충분하지가 않아 부지런한 친구들은 별도의 보충 수업을 받기를 원한다.

양알리는 재능이 뛰어난 친구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정도다. 공부 욕심도 많고 머리도 좋아 학급에서 1등을 놓지지 않는다.

한국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에서는 한국대사관이 주재하는 15개국에서 매년 한국어 능력시험(TOPIK)을 실시하고 능력시험에서 1등을 한 학생을 한국에 초청연수 참가자로 초청을 한다. 

양알리가 2019년 봄, 라오스에서 실시한 TOPIK에서 1등을 하여 2019년 15개국의 대표 학생들이  참가하는  한국 초청연수 참가자로 7.9~7.19일 사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고 지난 6월 비엔티안에서 열린 제24회 세계한국어웅변대회 예선전에 참가해 1등을 하여 8월 19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본대회에 출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 웅변대회 참가를 위해 내가 원고와 발음교정 등을 지도해 주었다.  20년이 넘도록 국내 여행한번 해보지 못하던 양알리가 매달 외국을 나가게 되어 본인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양 알리가 한국여행중에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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