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태국의 변방 도시 우돈타니 여행

지난번 비자런 때 농카이를 다녀왔기에 이번엔 조금 더 멀리 우돈타니를 목적지로 잡았다. 가기 전에 우돈타니에 대하여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지만 딱히 볼만한 곳이 없다. 쇼핑몰, 호수, 대학교 등이 고작이고 아니면 50km, 100km 멀리 나갔다 와야 한다.

그래서 일단 낯선 곳에 한번 갔다 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아침 8시 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7시에 출발을 하였다. 비엔티안의 내가 사는 APT에서 딸랏사우 국제버스 터미널 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라 천천히 걸어서 가니 7시 반이 채 되지 않았다.

 

낯익은 매표소 창구에 여권과 22,000킵을 주니 버스표를 내 준다. 처음 와서 헤매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일머리를 안다는 것과 모른 다는 것은 이처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8시에 출발한 버스는 30분 만에 국경 출입국 관리소 내에 도착을 한다. 짐이 없으니 편하기는 하다. 몇 번 해본 출입국 절차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 되었다. 마지막 출입국 개폐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카드가 있어야 한다. 카드 판매소에서는 평일이라 여권을 내미니 공짜로 카드를 내준다. 공휴일에는 돈을 받기 때문에 처음에는 왜 받다가 안 받았다가 하는가 헷갈려서 당황하기도 했다.

 

출국심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승차 한 뒤 메콩 강의 우정의 다리를 건너 태국 령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도 일사천리로 입국수속을 끝낸 뒤 버스에 승차 한 후 우돈타니 시내를 향해 출발 했다.

창밖의 풍경은 산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펼쳐진 시골 풍경 이다. 그리 먼 옛날이 아닌 지난날 이곳은 라오스의 땅이었다는데 이제는

엄연한 태국의 땅으로 라오스 사람들은 출국수속을 한 뒤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  출국 수속을 위해 하차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


  

 

이제 와서 라오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그래서 태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메콩강 강변의 공원에 서있는 아누봉 왕의 동상은 비장한 표정으로 왼손은 칼을 잡고 오른 손은 태국을 향하여 뻗은 채 태국을 응시 하는 모습으로 서 있어 라오스 국민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우돈탄의 국제버스 터미널

 

한 시간 만인 1010분에 우돈타니 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라오스 보다는 규모가 크고 깨끗한데 이 것이 국력의 차이인가?

버스에서 내리니 뚝뚝이 기사들이 몰려들어 저마다 손님을 태우려고 난리 법석이다. 혼란한 장소를 벗어나 우선 환전부터 할 생각으로 주위를 살피는데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어디 가냐고 묻는 기사들이 한사람도 없다. 내가 차를 탈 사람처럼 안보이나?

 

뚝뚝 이를 타던 택시를 타던 일단은 태국 돈으로 환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저곳 기웃 거리는데 그 많은 뚝뚝이 기사들도 나한테는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아 조금 서러운 생각마저 든다.

아하! 왕따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런 기분을 말년에 낯선 태국 땅에 느끼게 될 줄 누가 알았나?

 

큰길 까지 나와 기웃 거리다가 다시 터미널 쪽으로 다시 가서 앞 가게에 들어가 환전소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도대체 대화가 안 된다. 말을 못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딸라를 꺼내 들고 바꾸는 시늉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사람 저사람 사람만 바뀐 채 계속 떠드는데 그중 똑똑해 보이는 기사 한 사람이 오더니 자기가 알려준다고 가게 밖으로 나와 큰 길 쪽 보석상을 가리키며 손짓을 한다. 눈치가 백단인 나는 단박에 알아듣고 고맙다고 손을 흔들고 그 보석상으로 달려갔다.

 

역시 예상이 적중했다. 환전을 하겠다고 하니 돈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비공식 환전하는 곳은 환률 적용이 완전 자기 입맛 대로다.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나름대로 꾀를 써서 10달라만 바꾸어 달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380밧드를 받아야 할 것을 300밧드만 주었다. 2700원 정도를 손해를 본 셈이다. 100딸라를 바꾸었으면 큰 손해를 볼 뻔했다.

 

! 다음엔 뚝뚝 이를 타고 숙소를 가야 하는 문제가 남았다. 내가 예약한 곳을 핸드폰에서 검색해 보니 3.5km 거리에 있는데 작은 호텔이라 기사들이 잘 모른다. 마침 여자 기사가 있어 지도를 보여 주고 이곳을 가자고 하니 방향은 아는데 그 호텔은 감을 못 잡는다.

그래서 일단 가는데 얼마요?” 하니 손가락 8개를 보여 준다. 80 밧트? 환률 계산기로 두드려 보니 아까 환전할 때 손해 본 그 금액 80밧트 2700원이다. 한국 택시 기본요금도 안 되는 돈이라 오케이 갑시다하니 그 말은 잘 알아 듣는다.

 

뚝뚝이 뒤에 타고 가는데 차에 완충장치가 없어서 그런지 엄청 튄다. 길이 갈라지는 곳이 나오면 그 아줌마는 백미러로 나를 보며 태국 말로 이쪽이에요?” 라고 물으면 나는 한국말로 아니 왼쪽 길이요하며 길을 가르쳐 주며 가기를 20, 나는 내비를 보랴 길을 확인 하랴 엄청 바쁜데 목적지에 다 와서 내비는 오른 쪽 작은 골목길을 가리킨다. 길이 너무 좁아 조금 의심스럽지만 이럴 때 대장이 흔들리면 안된다. 과감하게 오른 쪽 골목으로 돌아가요하니 아줌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잽싸게 우회전해서 골목길로 들어간다. 어느새 우리는 호흡이 척척 맞고 있었다.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서 좌회전 하자 우리가 가는 목적지 Prajak Place Hotel 간판이 보이는데 이건 호텔이 아니고 우리나라 연립 아파트다.

그러나 좌우지간 우리는 이 어려운 길을 내비 하나 믿고 정확하게 찾아오지 않았는가? 그 아줌마 기사와 나는 너무 기뻐 하이화이브를 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50밧트면 오는 곳을 그 아줌마는 80밧트를 받았으니 나에게 제대로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 내 돈 천원!!

 

 

예상보다 작은 건물 규모에 실망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호텔 로비는 절대 아닌 작은 식당 카운터 같은 곳 앞에서 한 아줌마가 청소를 하다가 무슨 일이신가?” 라는 얼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오히려 당황해서 입구에 있는 호텔 이름을 확인해 보니 이름은 틀림없이 맞는다.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니 한참을 보다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어디에다가 전화를 건다.

!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말이 안 통하니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예약이 안 되어 있어요?”

컴퓨터를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니에요?”

그 아줌마는 태국 말로 뭐라 뭐라 하고 나는 한국말로 떠들어 대고 마치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한 참을 그러다가 또 젊은 사람을 부르고 하더니 마침내 207호 글씨가 써진 열쇄 하나를 주고는 올라가라고 계단을 가리킨다.

그 호텔, 아니 여관은 하루에 350바트, 우리나라 돈 12,000 짜리 방인데 나중에 입구에서 보니 “daily - monthly " 라고 쓰여 있는데 일일 숙박이나 장기 숙박을 다 받는 다는 얘기다.



▼  여관 같은 호텔 전경



▼  이것이 호텔 로비의 모습이다.



    ▼  호텔 안내 간판




▼  호텔입구에 큰 병원이 보인다. 이 병원 이름을 진작에 알았으면 뚝둑이 아줌마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방에 들어가 보니 2인용 침대에 에어컨, 냉장고, TV, 욕실 등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추어져 있어 도미토리 숙소가 아닌 것이 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 들어가 에어컨을 키고 앉아서 숨을 돌리며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도 안되었다. 여기도 우기가 시작이 되어 비가 오다말다 하니 5월 보다는 훨씬 기온이 낮다.

 

숙소 근처에 있는 호수를 돌아보기로 했다. 나름대로 조경을 해 놓았지만 우리나라 일산호수보다 규모도 작고 특별한 게 없어 힘들게 전부 돌아볼 마음이 안 생긴다.



    ▼  호수의 모습




▼  호수 근처를 얼쩡거리는데 꼬치구이 장사가 고기를 구으며 손님을 유혹한다. 앞에서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니 7개에 얼마라고 하는데 대화가 잘 안된다. 일단 달라고 해서 아무의자에나 앉아 먹고 있으니 외국사람이 자기 집에 와서 사 먹는 것이 신기한지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웃으며 쳐다 본다.



▼  길가 가게 간판이 요란해서 무엇인가 살펴보니 문신가게 간판이다.



 

이 우돈타니에서 볼 것은 멀리 가기 전에는 시내의 쇼핑센터라고 하여 뚝뚝이를 타고 센트럴 플라자 쪽으로 나갔다. 센트럴 플라자는 버스터미널과 인접해 있어 우돈타니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들어가 보니 규모가 제법 크다. 3층 은행에서 환전을 하고 나니 두려울 게 없다. 주머니에 돈이 있는 것 하고 돈이 없는 것 하고는 기분 상 큰 차이가 난다. 아까 보석상에서 10불만 환전한 것은 근래에 내가 한일 중에 가장 잘한 일 인거 같다.

 

 

여행 중 특히 외국여행중 혼자 다니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이다. 메뉴를 잘 못 선택하면 시켜 놓고 먹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국수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데 길거리 식당에서는 거의가 국수 음식만 보인다. 센트럴 플라자 지하에는 우리나라처럼 싸고 간단한 음식들을 먹을 수가 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줄들을 서있어 거기에 낄 엄두가 안 난다. 센트럴플라자를 나와 근처 한가한 서양식 카페에 들어가 간단히 요기를 했다.




▼  다음날 아침 9시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들고 나왔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다. 빵집이 있어 들어가니 아직 8시 오픈 영업시간이 안되었다고 한다. 아직 20분이 남았다. 그럼 그대가지 기다리면 안되냐고 하니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8시가 되니 직원들이 출근을 하는데 그제서야 한사람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  커피한잔과 같이 먹는 케익이 부담도 안되고 아침식사에 안성 맞춤이다.




▼  우돈타니 버스 티켓 판매소




    ▼  라오스의 비엔타인과 태국의 우돈타니를 왕복하는 국제버스


라오스 한인쉼터 봉사 활동의 애환 라오스 라오스

한인쉼터에서의 봉사활동 세 달, 그동안 나는 70 중반이 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봉사라는 단어에 그리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주위에서 어디 봉사를 하러 간다고 하면 그 내용을 알아보기도 전에 봉사 활동이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면이 있지 않는가 라는 느낌을 갖고 있어 마땅치 않는 시선으로 보기 일쑤였다.

그리고 연말 연시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을 날라주거나 도시락 배달 한번 해주고 신문이나 TV에 얼굴을 비치는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의 모습이 오히려 역겨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따지고 보면 나는 손하나 까딱 안하면서도 그나마 하는 봉사를 오히려 비난이나 하고 있었으니 나도 참 할말이 없다.

 

봉사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봉사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영어로는 service라고 표현한다.

남을 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그것이 진심이 되었든 가식이 되었든 쉬운 일은 아니다. 봉사는 한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적이어야 한다.

 

나는 3월에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인쉼터에 여행 와서 며칠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한인쉼터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인쉼터의 백사장이라는 분은 50대 중반의 경상도 사나이로 해병대를 제대한 글자 그대로 돌격 앞으로 스타일의 중년 사나이다. “옳은 일이다, 내가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본인이 손해가 나더라도 밀고 나가는 스타일 이라 3년간 한인쉼터를 운영하면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경영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 남들은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아우성인데 공짜로 쉼터를 마련을 해주고 여러 가지 편의 제공을 해주니 동종 업종 사람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을리 만무다.

 

한인쉼터는 여행자들에게 모든 것이 무료다. 낯선 나라에 온 여행자들에겐 우선 짐을 맡기고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핸드폰 사용이 가능한 와이파이가 제공되고, 화장실, 샤워실을 무료로 쓸 수 있고, 냉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또 짐을 맡기고 시내 구경을 할수도 있다. 그리고 여행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여행자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그리고 여권이나 여행 가방을 잃어버렸거나 빌려 타던 오토바이나 자전거 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119 역할도 해주니 여행자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가 외국 가서 여행을 하다보면 숙소 선정에서 부터 교통편, 쇼핑 등 여러 가지 닥치는 일 등 중에 한 번도 바가지를 안 쓰고 여행을 끝냈다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인쉼터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하면서 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사전에 알려주고 인도하는 역할을 사비를 들여 3년여를 끌고 왔으니 이런 일이야 말로 진정한 봉사 정신이 아니겠는가?

 

이런 내용들을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그동안 봉사라고는 해본 일도 없고 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조금은 부끄러운데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과연 우리는 남의 도움을 절대 받지 않고 살 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부모님들의 무조건 적인 희생과 봉사는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고 또 우리도 자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밖을 나서면서 시작되는 모든 일들은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자동차, 기차, 전철 그리고 잘 닦여진 도로, 철로, 모든 것들은 다 남의 도움으로 이루어 진 것들이다. 나는 문득 내가 우리나라에서 지금 내가 있는 라오스 까지 다른 사람들의 고생과 노력과 희생이 없었으면 무슨 방법으로 왔을 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한인 숙소에 묵으면서 자연스럽게 청소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이곳 한인 숙소의 손님들은 대부분 야간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또 도착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손님을 전부 안내하고 나면 새벽 3시가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아침 업무 준비가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라오스 여행 코스는 비안티엔도착, 방비엥, 루앙프라방 다시 비안티엔 귀환의 일정이 대부분인데 여행을 끝내고 마지막 날 루앙프라방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은 새벽 5시 넘어 도착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새벽에 어디 갈 곳이 없다. 그들은 결국 굳게 닫힌 한인쉼터 문 앞에 짐을 놓고 문 열릴 때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직원들은  새벽 3시에 일을 마무리하고 쉬러 들어갔으니 답답한 일이다. 또 새벽에 도착하는 손님들이 매일 있는 것이 아니니 문을 열어 놓을 수도 없다. 한번은 대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 놓았다가 도둑이 들어 차를 가지고 간적도 있다고 하니 생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한인쉼터 2층 숙소에서 묵던 때 새벽 5시 조금 넘어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젊은 친구 서너 명이 잠겨진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타향 땅 객지에서 얼마나 처량한 모습인가? 얼른 내려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 뒤부터 문은 내가 열어주기 시작 했다. 그리고 간단한 청소부터 시작을 하였다. 백사장은 나보고 청소를 직접 하지 말고 라오스 직원들이 나오면 시키라고 한다. 그런데 어지럽혀 있는 쉼터를 보면 도저히 손 놓고 바라볼 수가 없다. 그래서 시작된 한인 쉼터의 봉사 활동은 어느새 달을 세 번이나 넘겼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한국에 있으면 과연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나이 생각은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이에 특별한 기능이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는한 노인정에 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빈둥빈둥 집에서 삼식이 노릇하면서 마누라 눈치 보는 일 밖에 할 일이 없다. 그런데 외국에서 이름도 거창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남이 보기에도 훨씬 폼 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과 매일 얼굴을 대하니 정신 건강에도 상당히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은 유수와 같고 시위 떠난 화살과 같다고 했다. 70대의 세월의 속도는 70km로 달리고 80대는 80km의 속력이라고 했는데 금년도 어느새 반이 지났다. 이제 점점 빨라질 세월의 속도 속에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뜸 드릴 시간이 있다는 얘기인가?

인생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내 인생의 마무리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마지막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비엔티안에서 생활을 하면서 백사장과 같이 여러 군데를 다녔다.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이 이곳 학교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60년대의 모습? 6.25를 겪은 나의 기억으로는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19506월 나는 초등학교 2학년, 8살의 나이였다. 전쟁난지 며칠 만에 짐 싸들고 떠난 피난길은 영등포 집에서 몇 발자국 안 되는 시흥 외갓댁이 종착점이 되고 말았다. 9.28 서울 수복후 학교에 복귀한 우리는 학교 교사에 미군 부대가 들어서는 바람에 풍찬노숙신세, 야외에서 책상 대신 널빤지를 끈에 매어 목에 걸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고 공부를 하였다.

지금 라오스의 변두리 학교가 그 모양이다. 책걸상도 형편없고 칠판은 벽인지 칠판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교사 봉급은 한 달에 교사 200, 교장 400, 학생들 1년 월사금은 우리나라 돈 14천원인데 그 것도 미납자가 많아 여행자들이 여행 경비 줄여 4, 5백 불 걷어서 그중 어려운 애들에게 나누어 주면 그들은 기부자 앞에서 고맙다고 춤추고 노래 불러 답례를 한다.


내가 어린 시절 미군부대 근처 철조망에 몰려가 막사에서 쉬고 있는 미군들에게 헬로 기브미 쪼코렛외치면 고향생각 하던 미군들은 애들이 귀여워 과자나 쪼코렛을 던져 준다.

나는 기억 한다. 친구들 뒤에서 차마 같이 쪼코렛 달라는 소리를 못하고 뻘쭘히 서 있다가 쪼코렛 받아서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부럽게 쳐다보던 생각을…….

그런 옛날 나의 모습이 이곳 라오스 어린이들의 모습에 오버랩 되어 가슴이 아파온다.

그래서 내가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이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봉사는 결국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다는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주고받는 과정에서 봉사는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옛날 미군들에게 쪼코렛 달라는 친구들 뒤에서 나는 거지가 아니다라는 작은 자존심을 지키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돈이나 학용품 몇개 들고 어린 아이들을 앞에 새워 놓고 폼잡으며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는 과시적인 행사는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서로가 떳떳하고 좋을까 라는 생각으로 나는 고민을 하고 있다.


태국 농카이의 포차이 사원 (Wat Pho Chai) 여행

 ▼  포차이 사원은 농카이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이다. 국제버스 터미널 옆에 있는데 시장 골목으로 가면 작은 쪽문으로 들어갈수 있는 지름길이 나온다. 지난번에도 한번 들린 곳인데 이번에는 다른 곳은 가지 않고 이곳만 들리기로 했다. 라오스에서 보름에 한번 비자 기간이 끝나면 날자 연장을 위해  태국 국경을 넘어갔다 와야 하는데 가는 길에 이곳 저곳 둘러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날씨는 지난번 보다는 덜해도 여전히 덥다. 농카이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점심 먹기도 애매하여 일단 사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방향 감각이 혼란스러워 잠시 헤메는데 사원가는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으로 쪽문을 넘어 사원안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문턱에 발이 걸리면서 제대로 넘어졌다. 내가 큰대자로 넘어지자 마침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이럴 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순간적으로 넘어질 때는 안넘어지려고 버티면 더 다친다. 낙법 까지는 아니더라도 넘어지는 동작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야 덜 다친다. 요란스럽게 넘어진 것에 비하면 다행이도 다친 곳이 없다. 만약 객지 타향에 와서 다리라도 부러진다면 얼마나 낭패란 말인가? 

문득 정문으로 안들어 오고 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부처님이 보시고서 혼을 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는 혼자서 웃었다.
노인네 치고는 순발력이 대단하다고 혼자서 자화자찬을 하면서 절뚝거리며 경내로 들어가는데 전에 왔을 때 보다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가한 분위기라 마음이 편안해 진다.






 ▼  호되게 넘어지느라고 용을 쓰다보니 배가 고프다. 사찰 안 한편에 이동식 오토바이 상점들이 보인다. 슬금슬금 가까이 가서 먹을것이 없나 살펴보니 호떡 비슷한 찰떡과 음료수들이 보여 가볍게 요기를 하기로 하고 구매의사를 보이니 아줌마들이 적극적으로 이것 저것 권한다. 아줌마들은 태국말로 나는 한국말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려니 애로사항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파는 사람이 못팔리 없고 사려는 사람이 못 살리는 없다.

찰떡 값을 계산하는데 가격이 싼 것인지 비싼 것인지 낯선 태국 화폐 단위가 헷갈리는 나는 얼른 판단이 안선다. 좌우지간 내가 가진 태국돈은 전부해서 100바트 짜리 한장,  한국돈으로 3,300원정도니 돈이 모자라면 못 사먹는 수 밖에 없다. 100밧드 짜리 한장을 주니 잔돈을 거슬러 준다. 옆 가게에서 남은 돈을 전부 주고 사이다를 달라고 하니 얼음을 가득 넣은 컵에 사이다를 따라주고는 동전까지 덤으로 준다.

이곳은 테이크아웃 판매처, 양손에 찰떡과 사이다 컵을 들고 여기서 먹고 가겠다는 제스츄어를 쓰니 뒤에서 의자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벌떡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땡큐" 나의 고마운 표시를 아저씨는 눈치 빠르게 알아챈다.

나 역시 고마운 답례를 하느라고 손님들이 먹을 것을 사러 오면 무조건 엄지를 세우고 흔들어 대니 안사려던 손님들은 물건을 사가고 주인 아줌마는 좋아서 함박웃음을 웃는다. 그러면서 태국말로 나를 가르키며 뭐라고 하는데 아마도 저 아저씨가 내가 만든 찹쌀호떡 맛이 최고라고 한다고 주위 사람에게 자랑을 하는 거 같다.


▼  호떡장사 아줌마



▼  사이다 장사 아가씨, 이들은 오토바이 옆에 판매대를 달고 본인들은 오토바이 의자에 앉아서 장사를 한다. 가게를 문닫을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면 되는 완전 이동식 가게다.



▼  태국은 소승불교 국가라 사원의 건축 모습이 우리나라의 사찰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  건물 형태가 은근히 멋있다.










▼  이곳이 순금으로 만든 신성한 불상을 모셔 놓은 사원이다. 저 사원안에 들어가려면 계단 밑에 신발을 벗어 놓고 맨발로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이 햇빛에 달아 무지 뜨겁다. 처음에 멋모르고 올라가다가 너무 뜨거워 메뚜기 처럼 팔딱 팔닥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 보니 어린애들도 보이는데 올라갈 때 어른이 안고 올라갔나?



▼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 곳이다.


▼  모두 진지한 표정이다.






▼  불상이 있는 앞줄과 향을 피우는 뒷줄은 무슨 차이가 나는지?



▼  본당 안의 모습, 황금 불상이 정면에 안치 되어 있는데 생각 보다 불상의 크기가 작다.






▼  가까이서 본 불상의 모습, 이 불상은 원래 라로스에 있던 것을 태국이 전쟁중 약탈해 왔다고 한다. 처음 라오에서 이 불상을 가지고 메콩강을 건너다 강물에 빠뜨렸는데 신기하게도 이 불상이 다시 물위로 떠 올라 무사히 가지고 왔다는 얘기가 전해와 신비감을 더해 준다.  황금은 얼굴 부분만 칠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이 더욱 빛나 보인다.








▼  벽화들






▼  이 불상에 기도를 하면 효험이 많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을 찾는다.



▼  이 아주머니 표정이 상당히 진지하다. 무엇을 저토록 간절하게 기원하는가?



▼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 이다. 절심함과 진실함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  문에 새겨진 조각상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   이 건물의 입구는 세군데다. 양쪽 문으로는 사람들이 별로 드나들지 않는다. 정문으로 들어와야 정성이 돋보이는 것인가?




























▼  왓 포차이에서 터미널로 가는 사이에 있는 시장안의 차를 파는 아저씨, 지난번에 왔을때 진지하게 장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아 다시 한번 들려 보았다. 역시 이 집만 사람이 많다.  곧 성공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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