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현충원 외곽 서달산 산책길을 걷다 산, 산, 산

우리 원산회는 매월 둘째 토요일에 산행을 한다. 코로나로 모든 일이 마비가된 현시국에 당국의 지시에 충실한 우리는 산행을 거르기를 몇 번째, 3월 산행도 할까 말까 망서리다가 이렇게 쉬다가는 산우회 문 닫게 생겨 소수 인원이라도 가자는 의견으로 산행을 감행했다. 

현충원 산책길을 산행코스로 잡은 것 역시 궁여지책이기는 하지만 오래간만에 몇 사람이라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그지 없다. 

동작역에서 열시에 만난 우리는 사당쪽으로 가기위해 육교를 건너 가다보니 국립현충원 정문이 보인다
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우리의 선열들을 모신 곳이다.  



사당역 방향으로 꺾어지기 직전 우측에 산책길 입구가 보인다


능선길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엔 중간중간에 현충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들이 있다는 표시판이 보인다



금년 봄에 처음 보는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 있다


쉬어간다고 말리는 사람 없으니 우리는 부담 없이 쉬어 간다



중간에는 쉼터를 많이 만들어 놓았다




봄맞이 준비를 하는 원추리




개나리도 보인다



걷다보니 왼쪽 아래 정원이 보인다. 체육관 위에 만들어 놓은 정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벤치에 둘러 앉아 가지고 온 전 부침을 먹으며 한담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을 찍다보니 안전 거리를 지키지 않았다. 코로나가 우리를 비켜 가겠지?



능선길 중간에 있는 현충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의 모습이다



동네 사람들이 산책로를 많이 이용한다. 의자와 간단한 운동 시설들을 준비해 놓았다



이정표도 친절하게 설치해 놓고 




길가 고목에 만들어 놓은 새집들의 아파트, 장식용인지 진짜 새집인지 분간이 안간다


저 멀리 남산과 한강, 그리고 가까이에 동작동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꽃을 보니 이제 정녕 봄은 온 것 같다, 이렇게 하여 오늘의 산책길 산행을 끝내고 마음의 부담을 던다

그리움은 쌓이고 추억은 흘러간다 낙서장

그리움은 쌓이고 추억은 흘러간다

 

그리움이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과,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란 말로 설명이 된다.

 

어느 시인은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라고 읊었다. 우리는 그리움이란 과정이 계속되는 상황을 그리움이 쌓인다. 라고 표현한다. 그 쌓임의 정도는 사람들의 경우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데 시적인 표현의 그리움이란 상당히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그 당사자로서는 괴로움과 슬픔의 상황일수가 있다.

 

그리움이 쌓이면 작은 동산을 이루고 그 그리움이 더하면 높은 산을 만든다. 낮은 동산일 적엔 감당이 가능하지만 히말라야 고봉의 높이에 이르면 대책이 안 선다. 그래서 그리움은 높이 쌓아 놓을수록 좋지를 않다.

 

그리움의 반대말은 미움이다

미움은 뭔가가 꼴 사납고 마음에 들지 않아 거리끼고 싫어함. 또는 그러한 마음이란 뜻이다. 이 미움 또한 계속 쌓일수록 문제가 생긴다. 미움이 더하면 저주가 되고 그 저주는 심각한 상황을 가져올 수가 있다.

 

우리 주위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던 소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리움이 산같이 쌓이면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경우에 이르기도 하는데 미움 또한 마찬가지로 그 미움이 높이 쌓이면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그리움이나 미움은 적당한 선에서 조절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어릴 때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이 강아지나, 아기,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양을 나타내며 흘러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던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그 모양들은 어느새 없어지고 말아 서운해 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기억들은 지나간 추억 속으로 흘러가고 만다.

 

우리의 그리움이나 미워하는 마음 또한 흘러가는 구름처럼 생각할 수 없을까? 그리움과 미움을 지나간 옛날의 희미한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우리가 무난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너무나 운이 없나봐요' 라는 리의 한탄” 낙서장

한국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데 라오스는 조용하다. 그런 중에도 우리 한글 공부방은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다. 두 아가씨 중 알리는 빠지지 않고 공부하러 오는데 리는 얼굴 본지가 한 달이 넘었다.


리의 시골집은 요즘이 그동안 농사 지은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지난번 허리 수술을 한 뒤 아직까지도 거동이 어려워 어머니가 옆에 붙어 수발을 해야 하는 처지로 어머니 대신 리와 대학 다니는 여동생, 그리고 고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호출되어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형편이라 리는 한글 공부하러 오기가 어렵다고 한다.

 

리는 출가한 언니 말고는 집안의 맏이로서 본인의 고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짐작이 간다. 지난 번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고민하길래 내가 도와주어 한숨을 돌리나 했더니 그것으로 문제가 전부 해결될 상황은 아닌가 보다.

한글 공부방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수업을 하는데 어제도 알리는 혼자서 왔다. 알리에게 리는 언제 올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며 리의 근황을 얘기해 주는데 참으로 기가 막히다. 리가 며칠 전 언니 오토바이를 타고 20km 떨어진 집으로 일하러 가는 중에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그 지갑에는 리가 20평생 모은 돈 전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평생 모은 돈?, 그게 얼마인데?”

라오 돈, 태국 돈 등, 다해서 150불정도 된대요

이들에게 150불은 그동안 쓸 것 안 쓰고, 먹을 거 안 먹고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이니 어린 나이에 평생 모은 돈이라고 표현 할만도 하다.

리의 수입원은 일주일에 두 번 나한테 수업 받고 난 뒤 받는 식비와 월요일, 목요일 저녁 길가에서 복권 팔며 버는 돈이 전부인데 복권 팔아 얼마나 버냐고 물어보니 손님이 많을 때는 10만낍(13,000) 벌 때도 있고 없을 때엔 5만 킵(6,500) 정도라고 하니 150(150만 킵)이란 돈은 어린 학생들 입장에서는 20평생 힘들여 벌어야 하는 돈임에 틀림이 없다.


너무 낙담한 리는 친구인 알리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나는 너무 운이 없나봐라고 울더라는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150불이라는 돈은 누구에게는 껌 값일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평생 벌어야만 되는 돈일 수도 있다.

일단 알리에게 리에게 전해 주라며 결석하면 안 주기로 한 식비를 전해 주라고 했는데 원래 34일 한국에 들어가려고 사놓은 비행기 표가 코로나 때문에 캔슬 되는 바람에 이곳에서 돈을 인출할 통장이 없는 나 또한 이달 말까지 지낼 일이 걱정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했는데 리의 어려운 처지는 안보면 몰라도 옆에서 빤히 보고 있으면 내가 더 답답해진다. 리의 말처럼 리는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것일까?

하긴 라오스 사람들 중엔 리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 이 나라에 태어난 업보려니 생각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계 최저 빈국에 속하는 라오의 현재 상황은 60년대의 우리나라도 비슷했으니 그 당시를 경험한 나로서는 지금의 라오스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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