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설악산 비선대 산, 산, 산

설악산은 집에서 20분 거리라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수 있는 곳이다.  오늘도 뒷산 걷기 대신 설악산 비선대를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다. 양양에 언제까지 있을 지도 모르는데 가까운데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제 입춘도 지나고 해도 많이 길어져 한겨울 보다는 야외 활동하기가 훨씬 여유가 생겨 좋다.


▼  설악동 매표소에서 비선대 까지는 한시간 반 거리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평소에 바쁘게 지나던 곳을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며 맘껏 여유를 부리며 걸음을 옮긴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더불어 마음도 한가하다. 신흥사 앞 다리를 건넌 뒤 비선대로 가는 좌측길로 방향을 정한다.  




▼  안내도에 보면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 2.3km다. 그런데 경사도가 별로 없어 노약자들도 쉽게 갈수있는 곳이다.



▼  비선대로 가는 길의 소나무 숲길,  옛날 동계등반 때 이곳 눈길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몇 번씩 왕복하며 혀를 빼 물던 곳인데 이제는 많은 세월이 지난뒤 뒷짐지고 산보를 하고 있다. 먼 옛날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하던 그시절이 아련한 기억 속의 그리운 세월이 되고 말았다. 기억을 마음속에 넣어두면 추억이 된다고 했던가?


▼  전에 이곳을 많이도 지났었는데 일행과 같이 가다보니 그저 그런곳인가 하고 지나던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 를  돌아 보았다.
이름도 군번도 모르는 자유용사들, 그들은 이곳 험한 설악산 계곡과 능선과 숲속에서 싸우다가 죽어갔다.

내가 설악을 처음 찾았던 것은 대학 1학년 1961년도 여름이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그당시의 설악산,  길도 없고 안내판도 없고, 등산객도 없던 시절,  산길을 가다보면 철모, 탄띠, 군화, 심지어는 사람의 뼈 까지 볼 수가 있었는데 지금의 설악산을 보면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6.25당시의 생각이 나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되플이 될가봐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그 당시 서울 상공에서 적기와 아군기가 공준전을 하는데 정신 없이 오르내리며 쏘아대는 기관총 사격은 공포 그대로다. 무서워 울던 우리 남매를 아버지는 이불로 덮어 주셨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 총알이 못들어 올까?










▼  저항령 계곡 다리를 건넌다.



▼  저 멀리 저항령이 보인다. 저곳에서 내려오면서 고생하던 일 역시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저항령을 줌인하여 가까이 가본다.



▼  비선대 까지 1km가 남았다.



▼  이제는 그 험하던 산길이 고속도로가 되어 걸어도 힘이 안든다.



▼  와선대 앞이다


▼  너럭바위가 없어져 일반 계곡과 다름이 없다.






▼  비선대 앞의 다리, 옛날 이런 다리도 하나 없고 길도 제대로 없는 곳을 어떻게 다녔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  바위 틈에서 어렵게 삶을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


▼  녹기 시작하는 계곡의 물




▼  비선대 앞 계곡의 바위에는 이름 들을 많이 새겨 놓았다. 자기의 흔적을 남겨놓기 위해 애는 썼는데 우리는 그가 누군지 알지를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비선대 계곡에서 바라본 금강굴 바위, 저 위로 올라가면 마등령이 나오고 마등령을 넘어서 아래로 내려가면 오세암이 나온다.  



▼  이곳 비선대 계곡엔 식당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철수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  세존봉의 금강굴



▼  가까이 가보니 계단과 굴의 모습이 확인된다.


▼  이 다리를 건넌뒤 우측으로 가면 마등령으로 올라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양폭으로 가게 된다.


▼  비선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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